2026-04-25

대학은 제가 어린 시절부터 그려온 오랜 도착점이었습니다. 그 시작은 유년기였는데, 저는 그 시절부터 코딩을 좋아했습니다. 여느 또래 남자애들처럼 로봇이나 기계장치에 흥미가 있었고, 제 관심과 적성을 찾는 데 적극적이셨던 부모님 덕분에 직접 경험해볼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하드웨어를 만드는 것보다, 어깨너머로 보게 된 로봇 프로그래밍이 저를 더 끌어당겼습니다. 그렇게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개발을 접했고, 제 진로도 오래전에 정해졌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지식의 한계를 느꼈고, 동시에 학업에 집중해야 할 나이가 되면서 모든 활동을 접고 공부에만 매달렸습니다. 공부는 지겹고 수험 생활은 고됐지만,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하면 원하는 걸 마음껏 할 수 있다고 믿었기에 끝까지 완주할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대학에 합격했을 때 정말 기뻤고, 그 시간을 견뎌냈다는 사실에 스스로 뿌듯했습니다.

무언가 잘못되었다고 느낀 건 대학교 2학년쯤이었던 것 같습니다. 학부과정 절반이 다 되어가는데 제 앞에는 컴퓨터보다 수학책이 있는 시간이 더 많았고, 콘솔에 찍히는 숫자들은 저를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않았습니다. 저는 학업에 흥미를 붙일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부정했지만, 지루함을 넘어 불행함을 느끼는 순간에 결국 인정해야 했고, 이건 제 토대가 무너지는 일이었기 때문에 저를 혼란에 빠뜨리기에 충분했습니다.
이상했던 건, 학교가 멀어질수록 외부 개발 활동에는 오히려 더 마음을 쏟았다는 점입니다. 대단한 결과물을 낸 것도 아닌데, 무언가를 손수 만드는 동안에는 시간 가는 줄 몰랐습니다. 분명 같은 개발이었는데, 왜 학교 안에서는 그토록 손에 잡히지 않던 것이 밖에서는 그렇게 저를 사로잡았는지 그때의 저는 끝내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들로 당시 저는 제 생활과 상황에 큰 불편함을 느꼈습니다. 무엇이 문제이고 어떻게 고쳐야 할지조차 알 수 없어 정말 막막했습니다. 특히 이 시기에 이런 고민을 하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해 적잖이 당황스러웠습니다.

누구에게나 입대는 어느 정도 거부감을 주는 일입니다. 하지만 하필 그 시점에 입대를 마주한 저에게는 그 사실이 유난히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군생활 중에 생각이 정리될 수도 있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저는 제 문제가 절대로 그렇게 단순하게 해결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개발병은 저에게 무척 매력적인 선택지였습니다. 특히 실무를 계속 이어가다 보면 생각이 좀 더 또렷해질 것 같았고, 경력 인정이나 비교적 수월한 군생활 같은 이점까지 더해져 당시로서는 더없이 완벽해 보였습니다. 다만 바로 지원할 수 있는 건 아니어서, 합격에 필요한 가산점을 얻으려면 따로 프로그램을 거쳐야 했습니다. 그조차 저에게는 걸림돌이 아니었습니다. 그 과정들이 재미있을 것 같았고, 분명 도움이 되리라 믿었으니까요. 그렇게 저는 1년 휴학을 신청하고, 이듬해 입대를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돌아보면 의아한 건, 그 계획 어디에도 탈락이라는 상황을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당시의 복잡했던 제 심리를 따라가기는 어렵지만, 혼란 속에서 내린 조금은 성급한 도전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저는 24년 1분기에 도전했던 모든 정부 지원 사업과 사설 부트캠프에 탈락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당연했습니다. 연간 수십 명을 뽑는 자리였고, 몇 년째 그곳만 바라보고 준비해온 사람이 수두룩했으니까요. 그 이후로도 외부에서 벌인 크고 작은 활동들에서 실패가 이어졌고, 제 능력이 한참 모자란다는 사실을 저는 깨지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제가 멘탈이 약하다는 건 스스로도 오래전부터 알던 사실이었습니다. 저는 시험을 앞두면 며칠씩 잠을 설쳤고, 인간관계가 틀어지면 몇 달이고 곱씹는 사람이었습니다. 제 약함을 잘 알았던 만큼, 저는 늘 조심스럽게 제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움직였습니다. 그 덕인지 그동안은 제가 정한 길에서 크게 넘어진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은 실력으로도 마음으로도 준비되지 않은 채 뛰어든, 제게는 드물게 무리한 도전이었습니다.
그렇게 연이은 탈락을 마주하고 나니 마음이 크게 흔들렸습니다. 불안과 막막함이 밀려왔고, 어느 순간부터 그 감정들이 끊임없이 제 정신력을 갉아먹고 있었습니다. 그때는 마침 친구들도 군생활과 학교생활로 한창 바쁜 시기여서 저 혼자만 동떨어져 있다는 느낌이 자주 들었고, 휴학으로 일정이 밀려버린 탓에 이런 어긋남이 앞으로도 계속될 거라는 생각에 많이 외롭기까지 했습니다. 게다가 탈락한 사실도, 제 걱정들도 부끄러워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과의 만남도 자연스럽게 피하게 됐고, 스스로를 고립시켰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슬럼프에 빠졌다는 것을 느끼고는 있었지만,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다 결국 압박감을 견디지 못하고 중요한 자격증 시험을 결시해버린 날, 그제야 제 마음이 많이 망가졌다는 걸, 정신적 피로가 이미 한참 쌓여 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 뒤로 개발병 준비는 완전히 멈추고, 무너진 몸과 마음을 회복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회사 일을 비롯한 몇몇 활동은 이어갔지만, 개발병 준비만큼은 다시 붙잡기까지 꽤 긴 공백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 도전 기간은 2년을 훌쩍 넘기게 되었습니다.


이런 시기에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우연한 계기로 합류해 지금까지 다니고 있는 회사입니다. 처음 들어갈 무렵에는 그곳도 막 시작한 초창기였고, 저 역시 공백기에 무엇이라도 해보자는 마음이었기에, 이 정도로 오래 일하게 될 줄은 솔직히 몰랐습니다. 그런데 막상 다녀보니 일 자체가 정말 재미있었고, 그 안에서 배울 수 있는 것도 많았습니다. 오히려 슬럼프가 깊어질수록 더 일에 매달려, 자처해서 야근하며 새벽까지 코드를 붙들고 있던 날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처음 개발병을 지원할 때처럼, 실무를 계속 경험하다 보면 제가 좋아하는 것에 대한 의문도 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는데, 다행히 이 생각은 맞아떨어져서 결국 답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제가 정말로 좋아한 건 무엇이든 만들어내는 창작 행위 그 자체였습니다. 일찍이 진로가 정해져 있던 탓에 그동안 너무 개발에만 매몰돼 있었지만, 순수하게 행복했던 순간을 잘 떠올려보면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배움 자체가 목적이 되는 학부는 지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고, 비유하자면 저는 음악가인데 악기 만드는 법을 배우고 있던 겁니다. 이건 학교의 잘못이라기보다, 그 공간을 오해한 제 탓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그런 제게 초창기 회사는 오히려 더없이 값진 환경이었습니다. 부족한 게 많은 만큼 여러 시스템을 직접 손으로 짜며 다듬어갈 기회가 끊임없이 주어졌고, 이런 순간들 덕분에 저는 매일 설레고 기쁜 마음으로 출근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좋아하는 것의 정의를 확실하게 하고 나니, 자연스럽게 하고 싶은 것도 떠올랐습니다. 인디 게임 업계에서 일하다 보면, 정말 열정 하나로 게임을 만들고 꿈을 이루려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최근에 만난 전 직장동료분도 게임 하나를 출시하셨는데, 소개하기 전까지는 부끄러워하시더니 막상 그 설명은 30분 동안 들떠서 하셨던 게 인상 깊었습니다. 그분들을 보면서, 무모하다거나 대단하다는 생각보다는 본인이 좇는 가치를 따라 과감하게 행동하는 모습이 부러웠습니다. 동시에 그토록 바라던 게 분명했는데도 20대의 절반이 지나도록 그걸 외면해온 제 자신에게 미안했습니다.
그렇게 업계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여러 게임을 접하며 흥미를 붙여가면서, 저도 제 게임을 직접 만들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어느 순간부터 확고해졌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그 바람을 외면하지 않고, 하고 싶은 걸 온전히 해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세운 계획이, 전역하고 2년 동안 인디 게임 제작자로 활동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성과가 있다면 계속 이어가고 그렇지 않다면 그때 타협하면 되는, 스스로에게 적절하다고 생각한 기간이었습니다. 설령 성과가 없더라도, 제 자아를 실현한다는 가치만으로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 될 거라고 저는 믿었습니다.

이렇게 생각이 정리될 무렵, 후련함을 넘어 들떠 있었습니다. 오래 헤매던 답을 드디어 찾았다 싶었고, 한때 저를 무너뜨렸던 슬럼프도 어느 정도 가라앉고 있었고, 이제야 제가 저답게 살아갈 수 있겠다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자연스럽게 다시 해야겠다는 의지가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오기 시작했고, 거기에는 예전 같은 압박감이나 두려움보다는 진짜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 제대로 도전해보자는 마음이 더 강했습니다.


그 마음으로 2026년 2분기를 마지노선으로 잡고, 2월 회차 지원을 정말 마지막이라 생각하며 준비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여러 방면으로 멘탈이 전보다 단단해졌다고 스스로 느꼈습니다. 그런 제 모습을 보고 있으니, 그래도 지난 시간들이 의미 없지는 않았구나 싶으면서 더 힘이 났습니다. 서류가 가장 큰 벽일 줄 알았는데, 그 서류를 통과했고, 면접까지 잘 치르고 왔습니다.


2026-05-30

발표 전전날부터 거의 잠을 자지 못했습니다. 심장이 빨리 뛰어서 누워도 잠이 오지 않았고, 그렇게 다 합쳐 세 시간쯤 잔 것 같습니다. 발표 전날은 결국 꼬박 밤을 새우고 말았습니다. 발표 시각인 10시가 되었는데도 차마 바로 확인하지 못하고 숨을 고르고 있었는데, 문득 합격자에게는 10시 1분쯤 카카오톡이 온다는 사실이 생각났습니다. 하지만 제 핸드폰은 끝내 조용했고 복잡한 마음으로 병무청 앱에 로그인해보니 통지서도 일정도 아무것도 떠 있지 않았습니다. 합격이라면 당연히 떠 있어야 할 것들이 비어 있는 걸 보는 순간 가슴이 불로 지져지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결과를 조회해보니 6등, 이번 회차는 네 명까지 뽑으니, 두 명 차이였습니다.

떨어질 수도 있다고 생각은 했습니다. 저 말고도 경력 증명서를 낸 사람이 많았고,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분도 계셨으니, 저보다 나은 사람이 있는 게 당연했습니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정말 느낌이 좋았습니다. 제 경력 점수가 만점이 되는 시기에 맞춰 일 년 중 가장 많이 뽑는 공고가 올라왔고, 그동안과 달리 아무 차질 없이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저에게도 보상이 주어질 거라고, 순진하게 믿었습니다.

불합격을 확인한 그 순간에도 문밖에서는 어머니가 결과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곧 아버지에게서 전화가 왔고, 회사 잡담방에서도 다들 어떻게 됐냐고 물어왔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 누구에게도 아무 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저를 응원해준 분들께, 특히 부모님께 괜히 걱정만 끼치고 속상하게 해드린 것 같아 죄송했습니다.

지난 시간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평범한 대학 생활도 포기했고, 지인들과도 자연스럽게 멀어졌고, 혼란스러운 시기를 이기지 못해 오래 만난 사람과도 이별했고, 부채처럼 쌓여가는 압박감과 외로움에 맞서려 스스로를 세뇌하며 버텼습니다. 그래도 그 모든 게 제가 좇는 가치를 위해 정당하게 치러야 할 대가라고 생각했고, 징징대기보다는 다 이뤄낸 뒤에 지난 일처럼 가볍게 말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제야 제가 꿈꿔왔던 모든 게 허상에 불과했다는 걸 깨닫습니다.

오래전부터 밑 빠진 독처럼, 평소에도 스트레스에 정신력이 새어 나가는 걸 느끼고 있었습니다. 억지로 지어낸 희망으로 그 독을 채워오며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는 희망도 없고, 그걸 담을 그릇조차 남지 않았습니다. 며칠 전부터 잠을 못 잔 게 복선이었을까요. 그동안 단단해졌다고 믿었던 정신은 한순간에 무너졌고, 강해졌다는 믿음마저 착각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게 남은 건 군생활이고 이건 저에게 책임을 미루고 실패한 벌처럼 느껴집니다. 조금 더 잃기 싫어서 내린 결정이 잃을 것만 더 늘리고 말았고, 이제는 무너진 정신과 패배감만 끌어안은 채 그나마 가지고 있던 모든 걸 잃어야 합니다. 버틸 자신이 있고 없고를 떠나서, 상황은 이미 제가 감당할 수 있는 범위를 아득히 넘어섰습니다. 애초에 이길 수 있는 싸움이 아니었고, 그걸 알면서도 매몰비용에 빠져 스스로만 더 갉아먹었습니다.

전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