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elonromy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건 1958년, 영화 <크리스틴(Christine)>의 촬영장이었습니다. 로미 슈나이더는 이미 <시씨(Sissi)> 3부작으로 유럽 전역에서 사랑받는 19살의 스타였고, 알랭 들롱은 막 영화에 발을 들인 22살의 신인이었습니다. 영화 속 두 사람은 비극적인 사랑에 빠진 연인이었는데, 촬영장에서도 서로에게 마음을 빼앗기게 됩니다. 다음 해인 1959년에 두 사람은 약혼을 발표했고, 로미는 알랭이 있는 파리로 건너옵니다.
흥미롭게도, 두 사람이 함께 있던 시기는 알랭의 커리어가 폭발적으로 상승하는 시기였습니다. 알랭은 1960년 <태양은 가득히(Plein Soleil)>로 스타덤에 오르게 되고, ‘세계에서 가장 잘생긴 배우’라는 호칭까지 얻게 됩니다.
두 사람의 연애 절정기를 뽑자면, 1961년 루키노 비스콘티 연출의 <안타깝게도 그녀가 창녀라니(Dommage qu’elle soit une putain)>라는 자코비안 비극이 가장 많이 거론되곤 합니다. 당시 두 사람이 파리에서 가장 많이 함께 사진 찍히던 동거 시기였고 그런 커플이 같은 무대에 선 것 자체가 유럽 전역에서 큰 화제를 불러모았습니다. 이 무대는 로미의 변신을 상징하는 자리이기도 했습니다. 시씨로 굳어진 동화 속 공주의 이미지를 깨고 싶었던 로미에게 이 무대는 변신의 출발점이었습니다. 이 무대가 가능했던 건 들롱과 그의 파리 영화계 인맥 덕이라고 보는 시선들이 많은데, 두 사람의 관계가 단순한 연인 관계가 아니라 로미의 커리어 자체를 바꾼 동력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연애는 순탄하지만은 않았는데, 두 사람이 언쟁을 할 때면 알랭이 눈물을 보일 정도로 심하게 다투었다고 합니다. 후일담에 따르면, 두 사람의 성격은 정반대였다고 합니다. 알랭은 자유분방하고 로맨틱한 프랑스인의 기질을 가진 반면, 로미는 엄격하고 완벽주의적이었고, 이런 차이가 일상에서 여러 충돌을 만들어냈다고 합니다. 이후 로미가 할리우드로의 진출을 진지하게 고려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원거리 연애로 변했고,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만날 기회가 줄어들었습니다.
이 시점에서 비극이 닥쳤습니다. 알랭은 훗날 벨벳 언더그라운드와 협업하게 되는 모델 겸 가수 니코와 외도하여, 1962년 두 사람 사이에서 아들 크리스티앙 아론이 태어납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1963년 알랭과 로미는 약 5년간의 열정적인 연애 끝에 결별하게 됩니다.
로미는 할리우드로 진출했고 이후 1966년, 그녀는 독일의 배우 겸 연출가 해리 마이엔과 결혼하고 같은 해에 아들 다비드 크리스토퍼를 낳습니다. 결혼은 표면적으로는 안정의 시도였지만, 마이엔과의 관계는 처음부터 어딘가 무거운 그림자를 안고 시작됐다고 전해집니다. 마이엔은 스타인 아내에 대한 질투심을 가지고 있었고, 끊임없이 그녀를 깎아내렸습니다. 로미는 남편의 심한 열등감으로 인해 가정에 갇혀 지내야 했습니다.
다시 두 사람이 같은 화면에 잡힌 건 그 결별로부터 6년이 지난 1969년이었습니다. 자크 드레 감독의 <수영장(La Piscine)> 캐스팅 과정에서, 들롱은 로미가 아니면 자기도 출연하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다고 합니다. 당시 영화계에서 한발 물러나 있던 로미를 굳이 끌어낸 셈입니다. 촬영장에서 두 사람이 어떤 마음으로 서로를 마주했는지는 정확히 알 길이 없지만, 평론가들은 둘이 한때 연인이었고 들롱이 평생 그녀에 대한 애정을 품었다는 점, 그리고 영화 속 두 사람이 결혼하지 않은 채 연인 관계로 지내다 모호하게 결말짓는 모습이 실제 두 사람의 관계와 겹쳐 보인다는 점을 자주 지적했습니다.
이 영화의 성공을 계기로 두 사람은 결별 후에도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게 됩니다. 둘은 로미가 사망하기 전까지 가까운 친구 사이로 지냈고, 많은 교류를 했다고 전해집니다. 알랭은 로미 관련 행사에는 항상 참석해 공식석상에서도 굳건한 우정을 드러냈습니다.
그러나 그 사이 로미의 사생활은 천천히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1975년에 로미는 해리 마이엔과 이혼합니다. 같은 해 그녀는 자신의 비서였던 다니엘 비아시니와 재혼하지만, 이 결혼도 1981년 초에 파국을 맞았습니다. 4년 뒤인 1979년, 마이엔은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아들 다비드의 생부가 그렇게 떠난 일은 로미를 깊이 흔들었지만, 진짜 무너짐은 아직이었습니다. 1981년 여름, 14살이던 다비드가 의붓아버지의 부모님 댁 철제 담장을 넘다 사고로 세상을 떠납니다. 로미가 이 일을 받아들였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녀는 아들의 묘 옆에 자기 자리를 미리 비워두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1년이 채 지나지 않은 1982년 5월 29일, 로미 슈나이더는 파리의 자기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됩니다. 향년 43세. 공식 사인은 심정지였지만, 오랜 기간의 음주와 약물, 그리고 무엇보다 아들을 잃은 슬픔이 그녀를 그곳까지 몰고 갔다는 데에는 큰 이견이 없었습니다.
로미의 죽음 이후, 알랭은 그녀에 대한 그리움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들롱은 로미의 장례를 직접 주관하고 다비드를 로미 옆에 합장하도록 했으며, 이후 다시 연극을 시작했을 때 알랭은 과거 본인과 로미가 함께 나온 연극에서 쓰인 로미 의상을 드레스룸에 가져다 두었으며, 말년에도 집안 곳곳에 그녀와 찍은 사진을 걸어두었습니다.
그는 <파리 마치(Paris Match)>에 그녀에게 보내는 긴 편지를 발표합니다. 그 편지에서 그는 그녀를 옛날 둘만 쓰던 애칭 “내 푸펠레(ma puppelé)“로 부르며, 너는 공주처럼 묻힐 거라고, 내가 그렇게 해주겠다고 약속합니다. 이후 들롱은 여러 인터뷰에서 로미를 평생 단 한 명의 여자로 언급하곤 했습니다. 그녀의 묘 곁에 자신의 자리를 마련하고 싶다고 공공연하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비극은 어디에서 왔을까
두 사람의 이야기는 아름답다기보다는 비극적이고 슬픕니다. 제가 느끼는 비극의 포인트 몇 가지를 짚어볼까 합니다.
너무 어렸고, 빨랐습니다.
이미 고인이 된 배우들의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처럼 들리지만, 연애 당시 나이에 주목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로미는 19살, 알랭은 22살에 만났습니다. 누구나 20대 초반을 생각해보면 알겠지만, 이 시기는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이 형성 중인 시기입니다. 그 시기에 두 사람은 유럽 전체가 지켜보는 약혼한 커플이 되어있었고, 자아를 다듬을 시간 없이 타인의 기대를 받으며 어른의 관계로 진입한 것이었습니다. 둘의 성격으로 인한 불화를 생각해보면, 상대방의 세계를 이해해주지 못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커리어 비대칭
첫 만남 당시에 로미는 유럽 스타였고 알랭은 신인이었습니다. 그런데 5년 사이 알랭은 세계적 스타가 되었고, 로미는 시씨의 그림자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치고 있었습니다. 이런 비대칭은 한쪽에 불안이나 시기를, 다른 쪽에는 자유를 주었고 두 사람은 이 뒤바뀐 상황을 슬기롭게 받아들이지 못한 것 같습니다.
로미의 구원자 찾기
알랭에게 버림받은 후 로미가 선택한 남자들을 보면 전형적인 구원자 찾기 패턴으로 느껴집니다. 해리 마이엔은 그녀를 깎아내리며 가정에 묶어두려 했고, 다니엘 비아시니는 그녀의 비서였던 사람이었습니다. 첫사랑의 상실을 메우려는 시도였지만, 매번 잘못된 방향으로 갔고 그게 그녀의 자존감을 더 깎아냈습니다.
알랭의 회피
후에도 정설로 받아들여지는 평가이지만, 알랭은 나쁜 남자입니다. 현대 한국에서 나쁜 남자라는 단어가 가볍게 쓰이는 경향이 있으니, 다르게 말하면 그냥 잘생긴 쓰레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람둥이였던 점을 차치하고서라도, 그는 본인의 책임에서 항상 도망쳤습니다. 니코의 아들 크리스티앙 아론을 평생 아들로서 인정하지 않았고, 로미를 인생의 사랑이라 부르면서도 그녀가 살아있을 때 결혼하지 않았고, 그녀가 가장 무너졌을 때 옆에 있어주지도 못했습니다. 사랑의 진심 여부와는 상관없이, 그의 행동에서는 진심이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이 서사가 남기는 것
솔직히 알랭이 많이 위선적으로 느껴져서 알랭에 대해서는 다루고 싶지 않습니다. 로미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일단 ‘운명적 사랑’이라는 환상의 위험성일 것 같습니다. 두 사람이 서로를 평생 그리워했다는 점을 많은 사람들이 낭만으로 뽑지만, 저에게는 별로 낭만적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첫사랑을 평생 끌고 가는 것이 아름다워 보일 수 있지만, 그 무게가 현재의 삶을 짓누를 때 그건 낭만이 아니라 저주에 가깝습니다.
그리고 타인의 사랑으로 자신을 채우려 할 때의 위험성입니다. 로미는 알랭에게 받지 못한 것을 마이엔에게서, 비아시니에게서, 그리고 결국에는 술과 약에서 찾으려 했습니다. 첫사랑의 상실 자체가 그녀를 망가뜨린 게 아니라, 그 빈자리를 다른 사람으로 메우려는 시도가 매번 실패하면서 그녀를 무너뜨렸습니다. 자기 안에 토대가 없으면, 어떤 사랑도 그 위에 집을 지을 수 없을 것입니다. (단순히 상실뿐만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결핍에도 모두 해당되는 이야기인 것 같습니다. 연인 관계/인간 관계는 본인을 아래로 메꾸는 관계가 아니라, 탄탄하게 다져진 본인의 자아 위에서 형성되어야 바람직합니다.)